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회 일치 운동 (문단 편집) === 개신교와 정교회 === [[개신교]]와 [[정교회]] 간에 신학적인 만남의 역사는 1573년부터 1581년 [[독일]] 튀빙겐 대학교 루터 신학부 교수들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이에레미아스 2세 트라노스(Ιερεμίας Β΄ Τρανός) 간에 있었던 서신 교환에서부터 시작된다. 한편 칼뱅파와 정교회 간의 만남과 대화는 17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키릴로스 루카리스(Κύριλλος Λούκαρις, 1572–1638)가 만든 신앙고백서가 정교회 내에 일으킨 커다란 소용돌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키릴로스는 실제로 제네바에 가서 칼뱅의 주장을 깊이 공부하였으며, 그 결과 그가 쓴 조직신학과 신앙고백문이 다분히 칼뱅주의적이었는데, 정교회는 그의 신학사상과 신앙고백문을 '숨어들어 온 칼뱅주의적 이단'이라고 단죄하였다. 키릴로스 루카리스가 쓴 신앙고백문인 '[[기독교]] 신앙의 동방교회적 고백'(Eastern Confession of the Christian Faith) 원본은 제네바 도서관에 보관 중이며, 그 신앙고백문으로 야기된 여러가지 신학 논쟁과 스캔들에 관한 기록들도 같이 있다. 키릴로스는 이 신앙고백문을 쓴 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결과적으로 17세기 초에 개신교와 정교회 간의 일치를 위한 최초의 대화는 성과 없이 일단락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국제연합이 창설되는 국제적 상황 변화에 발맞추어 교회일치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현대 교회일치운동의 맥락 속에서 개신교와 정교회 간의 만남도 다시 시작되었다. 20세기에 양자간의 최초 만남은 1920년대 초에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서 열린 정교회와 개신교 간 신학 토론을 위한 만남이었다. 이후 1950년대에는 독일에서, 1968~1975년에는 북미에서, 1970년대에는 헝가리 데브레센에서, 그리고 1981년 이후에는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토론의 장이 열렸다. 이와 같은 여러 번의 만남을 통하여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이 다루어졌는데, 그리스도론과 성찬론, 신앙고백과 고백문의 역할, 성령을 통한 성화와 구원의 활동, 전례, 하느님의 계시와 역사, 역사적 상대주의와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권위, 교회의 사회적 책임, 창조와 자연보호, 혼인과 타종교인의 개종 등과 관련된 사목적 이슈들도 다루어졌다. 이러한 대화 가운데서 각 교파는 자기의 전통을 충실하게 해석하는 동시에 양자 간에 공통점이 많음을 서로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무엇보다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양측은 1979년 이스탄불에서 열린 개신교와 정교회 간의 신학적 만남에서 재확인하였다. 그리하여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양자간에 일치점이 더욱 많아졌으며, 공식적인 만남의 비전이 아주 밝아졌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자치권을 가진 모든 정교회에 개신교계와의 만남을 위한 대표자들의 명단을 보내달라고 하였는데, 그 대답이 모두 긍정적이었다. 개신교의 개혁교회 연맹측에서도 15명의 신학자 대표단을 임명하였다. 1988년, 1990년, 1994년에 만남과 대화를 가졌다. 양자 간의 주된 대화와 주제를 설정한 것은 1986년 예비적 만남에서 이루어졌고, 양자의 승인하에 마련되었다. 대화는 양측의 공동 기반인 니케아 신경부터 시작되었다. 논쟁의 여지가 많은 구원론이나 교회론을 언급하는 대신 기독교의 기본적이고도 공통적인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근본적인 교리들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개신교뿐 아니라 정교회도 교회일치운동에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처음 두 회기는 [[삼위일체론]]을 취급하는 데 할애하였고, 3번째, 4번째 회기는 강생론을 토론하는데 집중되었다. 참석 위원들은 그 성명서를 여러가지 잡지에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였다. 처음 두 회기 동안 다루어진 [[삼위일체론]]에 대한 문서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개신교와 정교회와의 교회일치적 신학 대화의 중요한 열매는 삼위일체론에 대한 일치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 성명서는 양자가 삼위일체에 대하여 신앙하고 고백하는 바의 일치됨을 공표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됨을 재확인하여 형제애를 공고히 함과 아울러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복음의 소명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풀이된다. 다만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조지아 정교회]]는 1997년, [[불가리아 정교회]]는 1998년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탈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